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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지구 한 바퀴] 17.03.2018 Belgrade 시내 탐방 그리고 니콜라 테슬라 박물관

김 정 환 2021. 1. 10.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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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쯤 되어서 Kalemegdan을 갔다. 요새 내부에 공원도 있고 볼거리도 많았다. 이쯤에서 봄의 기운이 천천히 감돌기 시작했다.

 

 

 

폴란드에서는 북부에서는 해변이 얼었고, 남부에는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는 쌀쌀했다. 부다페스트에서는 공원 같은 곳을 가지 않아서 계절의 변화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공원을 홀로 걸으니 곳곳에 초록의 색이 물들었고 봄을 알리는 꽃들이 숨밖꼭질 하듯이 만나 볼 수 있었다. 

 

 

 

부다페스트에서 형들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떠나오면서 외로움을 이겨보겠다는 다짐은 아직도 진행중었다. 그저 걸었다. 뭔가 볼 것이 있으면 보고 걸었다. 이런 요새를 슬로바키아에서 본 적이 있다. Devin 성이다. Devin 성에서 걸을 때는 이때와 다른 느낌이었다. 나의 눈은 주변을 더 신기하듯이 바라보았고, 발걸음은 더 볼 것을 찾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였다. 진정으로 외로워서였을까 아니면 이미 비슷한 것을 봤기 때문일까.

 

 

 

관광객으로 보이는 2명이 나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요새 내부에 있는 Damad Ali Pasha turbe라는 곳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이유는 참으로 고마웠기 때문이다. 이들과 함께 했던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터키에서 온 형제였다. 잠시 이곳으로 놀러왔다고 했다. 형은 영어를 잘했지만 동생을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형과 대화를 주로 했다. 이들과 함께 걸으면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그들과 함께 목적지는 없지만 어디로 걷고 있었다. 요새 내부에는 시민들을 위한 풍요로운 시설들이 잘 마련되어 있었다. 조형물도 있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도 있고, 간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요새를 거의 나와서 어느 카페로 갔다. 외부 카페였는데 바람이 간간히 불었다. 춥지는 않았지만 쌀쌀했다. 형제 중에 형은 일하는 회사에 대해서 말했다. 그는 LG 화학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진 몇 장을 보여주었다. 그의 상사였다. 한국분이셨는데, 깐깐하다는 평을 했다. 굉장히 깐깐했지만 인품이 넘치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추가로, 상사를 놀리는 이야기도 했다. 좋은 팀에서 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진 속의 한국 분을 보면서 나도 외국지사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크게 일어났다. 거의 1년 이상을 외국에 있었고, 특별한 경험들이 생기면서 내가 원하는 나라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크게 생겼다. 물론, 돈은 한국 물가로 받고 싶다. 아마 이때부터 외국에서 살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외국에서 유망있는 산업군을 조사했고, 직업군을 조사했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아래 사진 2장에서 청자켓을 입고 있고 선글라스를 쓴 뒤모습의 남자가 형제 중에 동생이다.

 

 

 

이들과 Kalemegdan을 나와서 붉은 화살표를 따라서 걸었다. 번화가 느낌이었다. 중간에 그들은 어떤 스포츠를 보기 위해서 펍을 찾는다고 꼭 가야한다고 했다. 풋살 경기로 기억한다. 이들은 이 경기를 죽어서라도 봐야한다고 했다. 그리고 서로 인스타 아이디를 공유하고 헤어졌다. SNS를 통해 그의 최근 소식을 접한 것은 누구의 결혼식에 참여한 사진이었다. 내가 SNS를 안 한지 3년 전이다. 지금은 아마 형제 중 1명이 결혼하지 않았을까?

 

 

 

공화국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시위(?)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궁금했던 나는 주변에 있는 한 사람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코소보라는 나라의 독립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2008년 이후 코소보 독립선언 이후 세르비아에서 독립해 코소보 공화국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르비아와 코소보 사이에 다툼이 현재까지 많았다고 합니다. 사상자도 나왔다고 하네요.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니콜라 테슬라 박물관이다. 니콜라 테슬라는 세르비아계 오스트리아인이다. 태어날 때부터 오스트리아 제국(현재 크로아티아)의 지배를 받은 지역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갔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간에 니콜라 테슬라에 관한 다툼이 있다. 여튼, 이곳에 박물관이 있다고 하니 가봐야겠다.

 

 

 

박물관으로 가기 위해서 큰 도로를 따라서 걸었다. 그런데 시위의 행진이 큰 길을 따라서 이동했다. 생각했던 것 보다 평화적으로 행진이 진행되고 있었다. 

 

가는 길에 공원이 있었다. 공원 내부에는 성 마르카 교회가 있었다. 더 둘러보고 싶었지만, 테슬라 박물관이 닫으면 큰일이기 때문에 서둘러 갔다.

 

 

 

18시쯤 되어서 니콜라 테슬라의 박물관 입구에 도착했다. 다행이도 마지막 입장이 이루어 지고 있었다.

 

 

 

박물관 안내를 도와준 이 분의 이름은 Nida이다. 박물관을 나오면서 그녀에게 이름을 물었고 이름은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 두었다. 그 이유는 후반부에 말씀드리겠다. 나를 포함한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다. 견학을 온 것으로 보이는 학생들과 선생님이 있었고, 특별한 누군가 있었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의 나의 감정은 벅찼고 기뻤고 행복했다. 아마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그 누군가와 그 대화로부터 나는 감명을 받았었다.

 

나는 과학교육을 전공해서 물리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래서 이 곳을 꼭 방문하고 싶었다. 그리고 전공책에서 배운 테슬라의 물리 이론들을 보고 싶었다. 실제로 이곳에 오면 많은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원래 이 포스팅의 계획은 이러했다. 이곳에서 배운 모든 현상들을 조사해서 이 포스팅에 정리하는 것이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포스팅을 쓰고 있는 나의 상태가 좋지 않다. 피곤하다. 그래서 다음에 이 포스팅을 볼 때, 더 붙여서 쓰겠다.

 

 

 

이 밑으로는 박물관에서 체험한 활동과 니콜라 테슬라의 물품, 발명품들이 있습니다. 지금와서 찾아볼려고 하니 어떤 현상이고 어떤 물건인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하나 하나 조사해서 계속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그냥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는 호감이 생깁니다. 그들의 열정은 순수하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오늘 니콜라 테슬라에 대해 안내를 해준 Nida에게서 그 열정을 느꼈습니다. 정규 안내가 끝나고 박물관이 닫기 전까지 박물관을 돌아다니면서 그녀에게 여러가지를 물었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건 재미있나요?"

"왜 이 일을 하게 되었나요?"

"이 일을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셨어요?"

......

 

첫 번째 질물에 대한 답만 여기에 적어본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하는 걸 즐거워 해. 그리고 물리도 좋아하거든. 그래서 박물관에서 일하는 것은 나에게 정말 즐거운 일이야.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고 그들에게 물리를 가르쳐줄 수 있으까. 딱 너 같은 사람한테 ㅎㅎㅎ"

 

Nida도 지금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랍니다. 현재 코로나 때문에 박물관도 제한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이 박물관을 찾아갔을 때, 그녀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순수한 열정이 부러웠고 그래서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너가 사람들에 안내를 할 때 너에게서 순수한 열정을 보았고 나는 감명을 받았어. 그래서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지. 그 덕분에 나도 이렇게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전부 너 덕분이야. 고마워."

 

 

 

박물관이 닫을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이제 호스텔로 걸어가야 할 시간입니다. 밤 8시에 왔던 길을 돌아가는데 거리의 불빛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아까 오면서 보지 못했던 성 마르카 교회도 보았습니다.

 

 

 

곳곳에 코소보 독립 반대라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있었다. 아마 이때 코소보라는 나라를 가지 않기로 결정했던 것 같습니다. 이 때 자료를 조사해보니, 불 태우고 던지고 난리났었습니다. 당시에 굉장히 위험한 나라라고 검색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호스텔로 가는 길에 이렇게 번화가가 있었습니다. 단언컨데, 저는 확실할 수 있습니다. 이때 제가 느낀 감정은 여행 중에 느꼈던 외로움 중에서 가장 컸습니다. 왜냐하면, 거리에는 서로 함께 걷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장 외로운 날이었지만, 그리움을 가장 크게 느끼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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