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책 리뷰

류성룡, 7년의 전쟁 by 이종수

김 정 환 2021. 11. 21.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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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마음대로 리뷰를 시작하겠습니다.

팟캐스트에서 징비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3시간의 이야기 동안에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은 류성룡이었다. 류성룡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를 알아보고 싶어서 징비록을 읽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읽다보니 류성룡보다는 임진왜란의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시작을 하게 해준 의도에서 다소 멀어진 감이 있었지만 이 또한 좋았다. 

 

 

줄거리 시작...

총 11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 첫 장계

1592년 4월 17일 아침 부산성이 함락된다. 당시에는 왜구의 노략질이 많아서 조정에서는 조금 큰 노략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적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았다. 몇 해 전부터 일본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의견을 내고 대비했어야 했다. 하지만 오랜 평화에 괜한 일을 만들어 분란을 일으킨다는 비난과 빈정거림도 없지 않았다.

 

부산성이 이후에 송상현이 지키고 있던 동래성도 무너졌다. 그리고 빠르게 밀양도 함락되었다. 조선의 군사제도인 제승방략에도 문제가 있었다. 

 

 

 

 

 

 

 

 

2장. 파천

신립과 이일 장군이 출정했다. 상주에서 이일은 대패한다. 그리고 신립은 탄금대에서 일본에게 대패한다.

 

4월 30일, 임금은 한양을 버리고 피난간다.

 

 

 

 

 

 

 

 

 

 

 

 

3장. 도강

5월 1일, 선조는 개성에 도착한다. 그리고 5월 2일에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일본군이 한양에 들어온다.

 

 

 

 

 

 

 

 

 

 

 

 

 

 

4장. 긴 여름

5월 7일, 선조는 평양에 도착한다. 하지만 일본군이 진격하면서 선조는 의주로 대피한다. 결국 6월 15일 평양도 함락된다. 이제 일본의 육군은 해군과 합세하여 서쪽을 공격하려고 했다. 전라도에는 곡창지대가 있었기 때문에 장기화된 전쟁에서 군량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의 이 계획은 막히고 만다. 이순신이 한산도에서 일본 해군의 진격을 막아 냈기 때문이다. 7월 8일 한산도 대첩으로 일본의 육군은 평양성에서 고립되어 식량 지원을 받기 힘들어졌다.

 

 

 

 

 

 

 

 

 

 

5장. 세 나라

각지에서 의병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전라도에서는 전 판결사 김천일과 동료들이, 경상도에서는 현풍 사람 곽재우와 동료들이, 충청도에서는 승려 영규와 동료들이 힘을 합쳐서 일본군과 싸웠다.

 

10월 10일, 김시민이 지키는 진주성에서 승리가 울렸다. 진주성에서 승리함으로써 일본 육군은 전라도로 진입하기 힘들어졌다. 그리고 12월 25일 명의 제독 이여송의 원군이 의주에 도착한다.

 

 

 

 

 

 

 

 

 

 

 

 

6장. 진퇴

1월 8일, 조명 연합이 평양성을 탈환한다. 조선은 이 기세를 몰아서 계속 남하하고 싶었지만, 명군은 더 이상 진군하기를 꺼린다. 평양성 탈환으로 왜군은 임진강 이하로 물러나서 명에게 영향력을 끼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양성 탈환이라는 업적도 이루었으니 더 이상 무리하지 않았다. 

 

일본군도 기세가 꺽였다. 그리고 식량도 부족하니 한양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고니시 유키나가와 명의 심유경 장군은 강화협상에 들어가기로 했다.

 

 

 

 

 

7장. 환도

1593년 4월 18일, 일본의 강화 합의로 일본군은 서울에서 퇴각한다. 6월 29일, 일본은 퇴각하면서 진주성을 함락한다. 과거에 진주성에서 대패한 치욕을 갚기 위해서 였다.

 

서울을 되찾은 조선은 회복하기 위해서 제도적으로 행정적으로 노력한다. 그와중에 선조는 나라를 운영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약해졌다.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분조하여 조정을 나누게 된다. 

 

한편, 강화 합의가 되어 심유경은 송유창을 일본으로 보낸다. 그런데 서로의 이해를 맞추기 위해서 도요토미에게 거짓으로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내용을 전한다. 도요토미는 승리의 조건으로 명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다. 거짓을 도왔던 고니시와 송유창은 어쩔 줄 몰라하고 거짓이 점점 더해지면서 일이 커지게 된다. 요구에는 명의 황실과 혼인 그리고 조선의 분할 같은 내용 등이 있었다. 

 

 

 

8장. 재조

조선에는 늦게라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훈련도감을 설치하여 군사를 기르려 한다. 부조한 인원은 노비, 평민 등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집할려고 생각하고 부족한 군량은 세금 제도를 개편하려고 말이 나왔지만 지배층의 의견이 달라서 진행이 되지 않는다.

 

1594년 12월, 일본의 나이토 조안은 북경으로 들어가 명의 세 가지 강화요건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명나라는 책봉사를 파견한다. 1595년 11월 19일, 책봉정사 이종선은 부산의 일본군에게 도착한다.

 

 

 

 

 

 

 

 

 

9장. 재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이 승리했다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포로로 잡았다가 풀어준 왕자는 와서 감사함을 표하지 않았고, 조선에서 온 통신사의 직급도 낮았다. 그리고 강화의 내용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전쟁을 다시 하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1596년 9월 2일, 도요토미는 통신사 접견을 거부하고 재침을 선언한다.

 

그 사이 조선에서는, 1597년 2월 4일, 이순신은 모략으로 압송되어 투옥된다. 내용은 이러하다. 왜군(가케하시 시치다유=요시라)가 김응서(경상우병사)에게 고니시가 바다를 건널 때에 공격하라고 귓뜸해준다. 이것은 적의 함정이라고 이순신은 출정을 거부한다. 그리고 요시라는 거짓을 고니시가 바다를 건넜다고 말한다. 이게 조정에서는 이순신을 탓하고 비난하여 투옥된다.

 

1597년 4월 1일, 이순신은 백의종군의 명을 받는다. 그리고 7월 16일 이순신 대신 수군통제사를 맡은 원균은 거제에서 일본군에게 대패한다.

 

 

10장. 잠든 바람

1597년 9월 16일, 이순신은 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다. 그리고 명량에서 일본군을 박살낸다. 12척의 배로 일본 해군을 박살낸 그 유명한 명량해전이다. 

 

그런데 일본에서 큰 일이 발생한다. 1597년 8월 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한다. 적장이 죽었기 때문에 일본군은 전쟁을 계속할 이유가 없었다. 일본군은 빠르게 군대를 부산으로 집결시킨다. 일본군은 무사히 고국으로 가기 위해서 명나라 군사들에게 뇌물을 먹여서 그냥 지나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은 그걸 가만 두지 않았다. 

 

1597년 11월 19일, 전라도와 경상남도 사천 쪽에 있던 일본군은 바다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이순신이 절대 보내주지 않았다. 노량에서 이순신의 해군은 일본군으로부터 승리한다. 그리고 이순신은 이 전투에서 전사한다.

 

1597년 11월 26일, 일본 전군은 본국으로 완전 철수한다. 그렇게 길었던 7년의 전쟁이 끝났다.

 

 

11장. 그림자

전쟁이 끝나고 놀랍지도 않게 조정에서는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기 시작했다. 그중에 류성룡도 포함되었었고 결국에 류성룡은 파직된다. 고향으로 돌아간 새애 류성룡은 1607년 5월 6일 세상을 떠난다.

 

 

 

 

 

 

 

 

 

 

 

 

 

 

 

읽으면서... (주관적인 해석)

지은이의 주관적 생각이 한 번 들어간 책이기에 최대한 객관적으로 읽으려고 했다. 7년의 임진왜란을 책으로 읽으면서 명과 조선 그리고 일본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류성룡의 행동과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류성룡은 끝없이 백성을 위해 발로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주변에 입이 많았지만 실제로 발을 움직이는 사람은 적었다. 류성룡은 발을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류성룡은 자리에 앉아 말로만 일하는 상관은 아니었다."

 

류성룡은 대안을 가진 사람이다. 어떤 정책에 반대를 하면 근거를 제시하고, 그 정책을 대신할 수 있는 대안까지 제시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의견에 비난하기는 쉽고 누구나 한다. 누군가의 의견에 근거를 제시하며 비판하기는 덜 쉽고 덜 적은 사람들이 한다. 누군가의 의견에 근거를 제시하며 비판하고 그 의견을 대체할 대안을 제시하기는 어렵고 많은 사람들이 하지 못한다.

 

이런 류성룡은 모두와 함께 있으면서도 혼자 있는 것 같은 사람으로 보였다.

 

 

이순신으로부터도 배운 것이 있다. 명의 수군 제독 진린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이순신은 그를 위해 잔치도 열고 전투에서 얻은 공을 그에게 넘겼다. 마음이 가지 않더라고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처세술을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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