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책 리뷰

수레바퀴 아래서 by 헤르만 헤세

김 정 환 2020. 3. 2.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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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마음대로 리뷰 시작하겠습니다.

 

1월 26일에 베트남으로 여행을 갈 때부터 읽기 시작했다. 비행기 안에서 그리고 다낭 스타벅스 안에서. 그리고 한국에 귀국에서 읽을려고 하니 할 일이 생겨서 독서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3월 1일 갑자기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아마도 계속 컴퓨터를 보면서 작업하더니 종이가 보고 싶어졌나보다. 오후 4시 쯤에 대충 책과 볼펜 그리고 노트를 들고 카페로 갔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분량을 다 읽었다. 행복했다. 

 

책에 대해 리뷰를 써볼려고 하니 한 달 전에 읽었던 줄거리가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중간 중간 써놓은 필기가 있어서 다행이다. 다시 읽으려니 다른 책을 읽고 싶어서 그냥 리뷰를 쓰기로 했다. 

 

 

줄거리 시작...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어머니 없이 아버지 요제프 기벤라트와 함께 자라왔다. 한스는 의심할 여지 없이 재능 있는 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런 한스가 관료가 되었으면 했다. 이 바램은 마을 사람들 모두 자신의 자식들에게 갖는 바램이었다. 이런 한스는 특출나서 학교와 마을에서 기대와 바램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하는데 쏟았다. 그리고 마울브론 수도원에 시험을 치르게 되고 2등으로 합격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과 부모님 그리고 학교 선생님들은 모두다 하나가 되어 한스의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한스도 뿌듯해 보였다. 수도원에 입학하여 한스는 꾸준히 공부를 하며 학교의 '모범'적인 학생이 되어갔다. 그러다가 하일러라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는 학교의 종교적 전통을 거부하며 자유롭게 살고 있었다. 그의 성적은 많이 좋지 못했다. 한스는 그와 함께 어울리면서 과거에 자신도 그렇게 뛰어놀고 기뻐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한스는 점점 학교의 종교적 전통과 위선적 권위에 거부감을 느끼고 '모범'적인 학생과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그러던 어느날 하일러는 퇴학을 맞게 된다. 의지하던 친구가 없어진 상황에서 한스는 학교 생활을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들었고 결국 신경쇠약에 걸려서 휴학을 하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한스에게 마을 사람들은 그동안 한스가 학교에서 있었던 행동들을 목소리와 눈에 담아 그를 대한다.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부분 쯤에서 작가가 물음을 던진다.

 

"왜 그는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소년 시절에 매일 밤늦게 까지 공부를 해야만 했는가? 왜 그에게서 토끼를 빼앗아버리고, 라틴어 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동료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는가? 왜 낚시하러 가거나 시내를 거닐어보는 것조차 금지했는가? 왜 심신을 피곤하게 만들 뿐인 하찮은 명예심을 부추겨 그에게 저속하고 공허한 이상을 심어주었는가? 왜 시험이 끝난 뒤에도 응당 쉬어야 할 휴식조차 허락하지 않았는가? 이제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길가에 쓰러진 이 망아지는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한스는 자신이 아버지의 바람을 저버렸다는 죄책감 때문에 우울하고 어두워졌다. 주변의 압박과 죄책감 그리고 무가치함을 느끼던 한스는 죽음을 마지막 탈출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는다. 작가는 여기서 이런 문장을 썼다.

 

"하지만 아직 저 튼튼한 나뭇가지에 밧줄을 매달 시기가 오지 않았다."

 

'아직'... 그는 과연 스스로 자신을 내던질 것인가. 그는 힘없이 걷다가 과거에 자신이 훨씬 즐거웠고 활기가 넘쳤던 장소들을 둘러보게 된다. 그러다가 피혁 공장에 도달하게 된다. 그곳에서는 '진짜'아이들이 로제가 해주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몰려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한스는 잠시후 피혁 공장을 빠져나오면서 생각한다. 그곳에 있던 아이들처럼 그는 다시 아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다시는 피혁 공장을 가지 않기로 마음 먹는다.

 

가을이 되어서 마을에서는 과일 짜기가 한 창이었다. 여전히 창백하고 힘이 없던 한스는 구둣방 아저씨 플라이크의 초대로 과즙 짜기에 초대된다. 그곳에서 한스는 엠마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를 만나면서 한스는 가슴에 달콤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심장의 고동이 심해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녀를 좋아하게 된 이후로 한스가 바라보는 세상은 변한다. 마음은 설레고, 하늘은 높고 아름답게 느껴졌고, 강물은 맑았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가슴 깊숙이 묶여진 사슬을 끊어지고 자유를 만끽하려는 듯했다. 한스는 용기를 내어 플라이크 아저씨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와 첫 입맞춤을 한다. 작가는 한스가 느꼈던 입맞춤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참으로 대단하다!)

 

'수줍은 듯이 내민 한스의 입술이 그 소녀의 입에 닿았을 때, 강렬한 전율이 그의 몸을 휘감고 지나갔다. 이 순간, 그는 또다시 부르르 떨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하지만 그녀는 한스의 머리를 두 손으로 붙잡고, 그녀의 얼굴을 그의 얼굴에 들이밀며 그의 입술을 놓아주지 않았다. 한스는 그녀의 입술이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마치 한스의 생명을 삼켜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녀의 입이 자신의 입을 내리누르며 탐욕스럽게 빨아대는 것이었다. 한스는 나락에 빠져드는 듯한 나른한 느낌이 들었다. 낯선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그처럼 전율에 휩싸인 환희는 견디기 힘든 피곤과 고통으로 변해 있었다. 엠마가 그의 입술을 자유롭게 놓아주었을 때, 한스는 비트적거리며 경련을 일으키는 듯한 손가락으로 울타리를 꼬옥 붙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떠났다. 한스에게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그녀는 단지 한스를 가지고 논 것이었다. 

 

한스는 과거의 친구 아우구스트를 만나서 공장의 견습공이 되게 도와달라고 했다. 한스가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무척이나 기뻐했다. 이렇게 유익한 물건을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고, 새까매진 자신을 손을 보고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점차 한스는 죽고 싶으리마친 비통하고 불행한 심정으로 하루 종일 시계만 훔쳐보며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채 톱니바퀴를 갈고 있었다. 일요일에 아우구스트가 한스에게 멋들어지게 놀자고 제안했다. 한스는 정신이 희미해질 정도로 마시고 있었다. 그는 큰 소리로 웃기도 하고, 술잔을 부딪치기도 하고, 목이 터져라 노래도 불렀다. 그는 계속해서 술을 마셨고,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지고, 또 구역질이 나기도 했다. 그는 혼자서 비틀거리며 계단을 내려왔다. 한스는 사과나무 아래 이슬에 젖은 풀밭에 드러누웠다. 온갖 불쾌한 감정과 고통스러운 불안감, 혼돈에 싸인 산념 때문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자신이 더렵혀지고, 모욕을 당한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내일 나는 어찌 될 것인가? 그는 너무나도 낙심하여 자신이 처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영원히 쉬고, 잠들고, 또 부끄러워해야 할 것만 같았다. 다음 날 한스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되었다. 

 

 

 

읽으면서...

한스가 죽었을 때,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소년의 성장기를 다룬 소설이었기 때문에 한스가 어떻게든 행복한 결말을 맺을 거라고 가장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결말은 한스가 공장 견습공으로 일에 만족감을 서서히 느끼고 마음에 맞는 여자를 만나서 끝나는 진부하지만 입에서 '후....다행이다'라는 말이 나오는 결말이었다. 가장 보편적인 결말이고 이 소설을 읽게 될 아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결말은 슬픈 맺음이지만 아이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견습공으로써의 시간이 괴롭고 적성에 맞지 않아서 수도원으로 되돌아가는 결말이었다. 이 두 가지 결말은 한스를 정체성을 찾는 양갈래 길이었다. 억지와 주위의 기대에 응하기 위해서 시작하여 입학한 수도원, 반대로 자신이 해보고 싶어서 시작한 공장 견습공의 삶. 만약에 첫 번째 결말로 끝이 났다면 아이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고 말하는 교훈을, 반대로 두 번째 결말로 끝이 났다면 주위의 경험있는 사람들의 말을 따라 자신의 삶을 정하라는 교훈을 줄 수 있다. 하지만 헤세는 둘 다 선택하지 않았다. 헤세는 나의 뒤통수를 아무런 예고 없이 시원하게 통!하고 쳐주었다. 그리고 아직 멀었다는 듯이 비웃어 주었다. 나는 헤세가 한스를 죽임으로서 인생을 살아가는 목표, 방법에 옮음은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것도 아주 크게! 마치 하늘이 요동치면서 구름들이 빠르고 강력하게 움직이며 순식간에 'No right way in your life!'라고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말이다. 책의 제목이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점과 한스의 삶이 헤세의 삶과 거의 일치하여 마치 자서전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를 미루어 보면, '자신의 정체성은 압박감에서 벗어나 주도적으로 인생을 끌고 나가야한다. 수레바퀴에 깔리는 달팽이가 아닌 수레를 끌면서.'라고 말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나도 이점은 동의한다. 그래도 여전히 나의 생각을 가지고 있으려고 한다. 만일, 한스가 하일러를 수도원에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차분하게 인생을 잘 살고 있을 수도 있다. 한스는 누가 복음 공부를 마치 상쾌하고 푸른 자유의 하늘에 나타난 한 조각 구름이라고 표현했다. 만일, 한스가 견습공을 아우구스트처럼 손에 굳은 살이 생기고 계속 했더라면 일이 즐거워졌을 수도 있다.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헤세는 압박을 원하지 않은 것 같다. 한스가 압박받는 느낌을 글 전반부에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마을의 목사는 이런 말을 한다.

 

"시험에 떨어진다는 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구나. 전혀 불가능한 일이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니!"

 

이와 반대로 구둣방 플라이크 아저씨는 한스에게 시험이 있기 전에 말한다.

 

'시험이란, 단지 외형적이고 우연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스에게 환시켜주었다. 시험에 떨어진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가장 탁월한 학생에게도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해 주었다. 설혹 한스가 그런 일을 당한다 하더라도, 신이 모든 영혼들을 위하여 특별한 섭리를 가지고 있으며, 예정된 길로 그들을 이끈다는 사실을 생각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한스의 장례식 날 플라이크 아저씨는 한스의 아버지 요제프 기벤라트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나, 우리 모두 저 아이에게 소홀했던 점이 적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진 않으세요?"

 

흔히, 자신의 꿈과 정체성을 스스로 찾으라고 말한다. 부모님과 주변의 기대없이 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라. 하지만 정년 이것이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나의 수레를 끌 수 있을까? 정체성은 본질적으로 타고 나는 것인가? 정체성은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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